지역 장터 '마실장'에 전을 펴다.

-곰살쟁이






한 해 전인 2013년 9월 1일, 강진에 사는 나는 아침부터 서둘러 장흥 용산면으로 갔다. 지붕이 있는 작은 장터에 옹기종기 펼쳐진 전이 대여섯 곳,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모두 합쳐야 스무 명 남짓. 이리저리눈길을 돌려도 자꾸 사람들과 눈이 마주쳐 낯설고 민망했던 나의 첫 마실장. 월남고추와 애호박을 사려고 "얼마예요?" 물으니 "어, 그르게, 얼마를 받지요?" 하는데 킥킥 웃을 수밖에 없었던 첫 거래의 기억. 그렇게 1500원을 주고 산 월남고추와 애호박을 누런 종이봉투에 담아주는데, 무언가 머리를‘쨍!’하고 울리던…, 햇볕이 무척이나 뜨거운 가을날이었다.


마실장의 시작

장흥으로 귀농한 이들이 ‘얼굴이나 보자’고 시작한 마실장을 오일장터에서 열기로 했던건, 겨우 몇 년 사이에 어물전 한 곳, 채소전 한 곳만 남아버린 용산오일장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고한다.‘ 관계’가 끊어진 장의 말로를 눈으로 확인한 귀농인들은 마실장을 널리 알리기보다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알리고 장에서 만나 관계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한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만나니 안 보이면 궁금하고, 궁금하면 물으면서, 누가 여행을 가는지, 집안 행사가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아이들도 자주 보고 어울리니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 친구가 인연이 되어 부모들이 관계를 맺기도 한다. 관계가 생기니 챙겨서 가고, 좋은 이들에게 알려서 함께 가고, 거기서 또 새로운 관계가 생기는 순환이 있는 곳이 바로 마실장이다. 처음 시작한 이들이 생태적으로 살아보고자 노력하는 이들이었고, 마음 통하는 이들이 모이다 보니 건강한 먹을거리가 중심이 되고, 비닐이나 일회용품을 되도록 쓰지 않는 것도 자연스레 지켜졌다니, 마실장은 장에 오는 이들의 삶 그대로의 모습인 셈이다.


시골장 매니아, 전을 펴다

내가 대학에 가던 해에 부모님이 귀농하셨고, 1년 만에 휴학하고 난생처음 시골에서 살게 된 내게 시골장은 별천지였다. 채소, 생선이 싱싱한 것은 당연하고 값도 싼 데다 할매들이 손수 뜯어오시는 온갖 제철풀과 열매들! 아이를 낳고 시골살이를 선택한 뒤에도 습관처럼 장날은 꼭 챙기고 가까운 해남이나 장흥장도 한 달에 두세 번씩 챙겨서 가는 시골장 매니아인 내게 마실장은 그야말로‘이상향’이었다. 당장 다음 달부터 내가 구운 채식쿠키를 가지고 판매자로 참가하기 시작했고 안 입는 옷, 엄마가 만드는 발효액이나 장아찌, 미숫가루 들도 냈다. 쿠키만 구웠더니 재미가 없어서 지난 봄부터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재료에 따라 새로운 것을 들고 나선다. 방치 농법(?)으로 키워낸 메주콩으로 만든 채식귀리쿠키를 기본으로, 가을 텃밭에서 난 땅콩을 갈아 만든‘소보로’로, 독일식 티푸드인‘쿠흔을, 가물었던 날씨 덕에 풍년인 뒷마당 무화과를 졸여 달달한 머핀을, 봄바람에 설레는 마음처럼 부드러운 쌀카스테라, 흐린날에 커피와 함께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시나몬 롤, 맛난 자색양파를 얻어 양파잼을 만들고는 그와 어울리는 허브 포카치아를! 마실장을 알고 나서, 나의 한 달은 마실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마실장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맛보이고픈 빵을 고민하고, 밑재료를 준비하는 데 일주일이 꼬박 걸리기 예사며, 마실장 전날은 따뜻한 빵을 가져가고 싶은 맘에 늘 밤을 새우지만 어찌나 설레고 두근대는지 모른다.


마실장 사람들

쭈뼛거리며 처음 마실장에 간 날, 투박하게 생긴 나무 숟가락과 젓가락, 작은 옹기를 내어놓은,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함께 간 친구가‘전기없이 사는 그들’이라며 소개해준 하얼과 페달. 비자나무 숟가락과 대나무 젓가락을 사포도 없이 온전히 칼로 깎아낸다는 말에 깜짝 놀라고, 자전거로 산을 올라 따온 야생녹차를 황토방에서 소나무만 때서 발효시킨‘달오름차’에 다시 한 번 깜짝! 자연에서 꼭 필요한 것만을 취하며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나만은 아닐 터. 하얼과 페달이 마실장에 내어놓는 물품들은 늘 장터의 화젯거리다.호박이 풍년이라 만든 호박잼을 만들다가 어쩌다 넣은 바질 덕에‘대박’을 치기도 했고, 옹기화로에 땔감, 옹기솥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내어준 따끈한 현미채소수프로 한겨울 꽁꽁 언 몸에‘불의 기운’을 전해주기도 했다. 올 봄, 채집한 풀과 꽃 그리고 손수 만든 된장소스로 김밥을 말아 뻥튀기 접시에 올려냈을 땐, 화려한 자연의 색에 모두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고, 산책하다 발견한 살구나무에서 땄다는‘야생살구’로 만든 잼에서 느꼈던 강렬한 신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요즘에는 하얼이 바구니짜기에 푹 빠져서 여러 가지 디자인과 소재로 된 바구니를 선보이고 있으니 달마다‘무엇을 팔지’예측할 수가 없는‘마실장의 (바퀴벌레)한 쌍’이다.


되도록 기계를 쓰지 않고 자연농을 지향하는 쪼 님과 율 님의 농산물은, 그이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근 주민들에게 인기가 더 많다. 양이 적은건지 몽땅 팔리는 건지 늘 궁금하지만, 아침까지 빵을 굽느라 늘 지각 아니면 다행인 나는, 내가 갔을 때 남아 있는 것 말고는 오늘 장에는 무엇을 갖고 나왔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 늘 아쉽다. 마실장에서 내가 처음으로 샀던 애호박도 율 님에게 산 것인데, 단단한 질감이며 단맛이 일품이었다. 먹물색 얼룩 때문에‘선비잡이’라는 이름이 붙은 콩도 쪼 님과 율 님 덕에 알게 되었는데 고소한 맛이 최고였다. 밭에 자리가 필요해 뽑아왔다는 아가양파는 6000원어치가 어찌나 많던지 피클을 담그고 담그고 또 담가 지금까지도 입맛 없을 때 한 병씩 꺼내 먹고 있는 효자 품목이다. 샛골 여름지기 작목반은 장흥 용산과 안양에 사는 몇 가구가 함께 토종종자를 자연농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곡물 중심의 농사를 짓는다. 오색미, 흑미, 토종 밀가루부터 어떤 집은 열무김치를, 어떤 집은 미숫가루를 또 다른 집은 효소나 담금주를 가지고 나오기도 한다. 지난 봄에는‘뻥튀기 아저씨’를 모시고 와서 요즘은 듣기 어려운“뻥이요~”소리가 마실장을 즐겁게 해주기도 했다. 건강하게 키운 현미, 흑미, 보리, 쥐눈이콩 들을 뻥튀겨서 한 보따리씩 들고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습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뻥튀기 아저씨’가 다시 오신대서 다들 기다리고 있다.


화순에서 오는 털보와 아낙은 <인간 극장>에 출연하기도 했던 유명 인사다. 처음에 나는, 누가 이리 이국적인 음악을 틀어놨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털보 아저씨가 팬플루트를 연주하고 계셨다. 풍물과 판소리에 이어서 팬플루트라니! 시골에서 문화생활이 안 된다고 누가 그랬나? 마실장 두 시간 동안 귀가 호강한다. 1000원이라는 싼값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의심을 지그시 누르며 사왔던 느타리버섯의 짙은 향과 쫄깃함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나만 놀란 게 아니었던지 그 뒤부터는 조기 완판이 돼서, 마실장에서 장사하느라 바쁜 나는 통 사먹을 수가 없다. 초여름 산에서 따오셨다는 오디도 구경을 못 해봤다. 손수 재배한 약초를 넣어 우리밀 누룩으로 빚은 가양주를 내시는 박성용 님의 테이블도 늘 문전성시다. 건강한 데다 맛난 술에 장모님 손맛표 안주를 제공해주니 사자마자 홀짝홀짝, 지나가는 사람도 한 잔씩 나눠먹고, 먹은 사람은 이건 약주가 분명하다며 사니 완판일 수밖에!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맥주를 끊은 내게 한 달에 한 번, 알딸딸함을 선사해주는 가양주에 폭 빠져서‘생주’인 줄 모르고 꼴딱꼴딱 마셨다가 혼난적이 있으니 꼭 알코올 함량을 확인하시길!


해남에서 오는 송항건 님은 농약, 비료, 액비, 퇴비, 제초, 비닐이 없는 6무(無)농법을 고집하는 자칭‘게으른 농부’다. 농사지은 쥐눈이콩으로 만든 된장과 간장 맛도, 능숙하게 바로 볶아주는 해바라기씨의 고소함도 참깊다. 사실‘인증’말고는 제 값을 받을 수 없는 현실에서 자연농으로 판매할 농산물을 생산한다는 것은 밑지는 장사일 터인데 늘“게을러서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안 하는 거”라고 말하는 시원시원한 농부님이다.


화순에서 오는 청라 님과 상아 님네‘흑미가래떡’은 한동안 우리 집에 떡국 열풍을 불러왔다. 용감하게 혼자 귀농해서 기계없이 벼농사를 짓던 청라님에게 젓가락으로 낟알을 훑으며 친해진 상아 님이 나락다발을 들고 프로포즈를 했고 다올이, 다랑이 두 아이가 생겼지만 여전히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지난 봄 오래된 화물차를 폐차했다는 소식에‘이제 마실장에서 못 보겠구나.’했는데 아이 둘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오셔서 깜짝 놀란 날, 청라 님은 타로카드를 꺼냈다. 힘든 길이라 늘 오진 못해도 오늘은 볼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되는 식구들이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다시‘흑미가래떡’을 맛볼 수 있길 바란다.


장을 지켜오던 사람들과 마실장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처음 마실장을 설명할 때‘귀농인들이 여는 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지난 겨울 마실장 날, 어디선가 풍겨오는 싱그러운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고 있는데 친구가 적당히 익은 꼬막을 하나 들고 왔다. 알고 보니 누군가가 어물전 아짐에게 술을 한잔 권했고 어물전 아짐은 답례로 꼬막을 굽기 시작했다는 것. 곧이어 어물전 아짐이, 피워 놓은 불 옆에서 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장터의 모양이 티(T)자인 탓에, 예전부터 용산장을 지켜오던 어물전이나 채소전과 공간으로도 분리된 듯해 불편했는데 그 순간, 가슴에 따뜻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장터 바로 옆, 정갈한 한옥에 사는 은발의 멋쟁이 아짐은 늘 필요한 것만 골라 휙 사가시곤 했는데 언젠가 내게 커피를 주문하셨다. 한 잔 이었던 커피는 다음 달에는 두 잔, 그 다음 달에는 석 잔이 되었고 지난 달에는 컵을 씻어서 갖다주시기에“그냥 주셔도 되는데….”했더니“여기는 다 씻어서 갖다주더라고.”하시는데 감동으로 눈물이 핑 돌기까지 했다. 언제부터인지 장터에는 할매, 할배 들이 늘었다. 용산 사는 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동네 아짐이“집이들 보러”장에 나오신다고 했다니, 마실장은‘귀농인들이 여는 장’만이 아닌 것은 확실해지는 듯하다.


마실장에서 꿈을 꾸다

마실장을 알게 된 지 이제 1년, 내게는 꿈이 생겼다. 마실장에 오는 농부들은 ‘유통’을 생각할 만큼의 양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소농’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건강하게 기른 농산물과 나의 빵을 바꿀 수 있다면? 내가 그들의‘잉여’농산물을 살 수 있다면? 나는 먹을거리의 자립을, 소농들은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시작된 작은 꿈은 내 빵을 그이들의 생산물로 만들고 싶다는 큰 꿈으로 자랐다. 마실장에서 만나는 이들이 재배한 밀, 나아가 그밀을 함께 심고 키워 그밀로 구운빵을 나누고픈꿈!‘ 내공간’에서 그이들이 건강하게 길러낸 농산물로 요리하고픈 꿈! 아직 구체적이진 못하지만 조금씩 실천해보는 의미로 지난 번 간식꾸러미에는 해남 동이와 와이가 키운 자색양파로 잼을 만들어 넣었고 이번 마실장에는 미세마을에서 키운 감자를 구워서 팔기로 했다. 마실장에 오는 농부님들께 내가 가장 많이 쓰는 재료인 밀가루부터 부탁하고 싶었지만 제분이 어려워 밀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제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 올해는 자신있게 밀농사를 지어달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마실장에서도 농산물보다는 농산물가공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염려스러웠는데 처음에 자기 농산물을 가공했던 것을 넘어 마실장 안에서 재료를 구해 가공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 든든한 일이다.






앞으로 마실장은?

지역 장터로서 마실장이 갖는 의미와 기능은 실로 소중하다. 우선은 소농 농가들의 농산물을 지역 안에서 소비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직거래 장터로서 자리를 잡아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한 ‘유통’ 문제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좋은 물건을 싸게 산다.’는 논리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장 안에서의 관계를 통해‘이 사람의 물건은 믿을 수 있다.’는 그리고 더 나아가‘무엇을 생산해도 팔 수 있다.’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탄탄한 신뢰관계가 전제되어야만 물품이 다양해지고 꾸준히 찾는 이들이 생겨‘장이 흥하게’될것이다. 첫 마실장에서 비닐봉투가 아닌 노란 종이봉투를 보고 받았던 충격은 나에게‘자연과 모두가 함께 건강한 방식’을 고민하게 했고, 마실장에 오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집에서 휴지 옆에는 손수건이, 주방에는 얇은 행주와 작은 유리병이 자리를 잡았다. 습관대로 생협에 가려다가도 마실장을 기다리게 되어 냉장고에 비축돼 있던 식재료들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밥상도 단순해졌다. 장터에서 맺은 관계 속에서 다른 이들의 삶을 보고 내가 변화하는 것처럼 마실장을 찾는 이들도 작은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렇게 마실장은 진정한 의미의‘지역 안에서의 소통’과 함께 이어져가게 될 것이다.


여기저기 또 다른 마실장들

좋은 사람들과 서로 있는 것을 나눌 수 있어 좋고, 끈끈하게 당기는 이들이 생겨 좋은 데다,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되어 더욱 좋은 마실장! 장흥 마실장의 기운 덕분인지 여러 지역에서 특색있는 지역 장터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소문이다. 가까운 전남에만도 벌교의 ‘녹색살림장’, 해남의 ‘모실장’, 고흥의 ‘미치고 환장’, 곡성의 ‘영판 오진장’, 구례의 ‘콩장’… 그리고 전국 여기저기에 늘어나는 지역 장터들 소식이 반갑다. 안타깝게도 먹고살 수 있는 자원이라고는 나 자신의 노동력 하나뿐인지라 아직 다른 장에는 방문해본 적이 없지만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지역마다 장마다 개성이 뚜렷하다고 한다. 이러한 지역 장터들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한 대안으로서, 거대자본을 거치지 않고 지역의 생산물을 지역 안에서 소비하는 진정한‘로컬푸드’를 실현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또한 자급하는 삶을 기본으로 한 소농들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화폐소득을 이러한 장터들이 책임져줄 수 있다면, 시골살이를 꿈꾸지만‘밥벌이가 없어서’올 수 없다는 이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마실장 덕분에’좀더 많은 이들이 시골에 내려오고 또 그렇게 마실장은 더욱‘흥’하게 되는 순환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2014년 귀농통문 가을호 중에서..)


곰살쟁이

남다른 기술도, 화려한 경력도 없이 그저 '건강한 재료'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빵 굽는 여자.

전남 강진에 내려온 지 4년차. 시골에 와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마실장을 만나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며 오랫동안 꿈꾸던 공간 '곰살쟁이의 빠끔살이'를 준비하고 있다.




위치: 대한민국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

대한민국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