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배 협동조합을 꾸리며

- 이연진




2009년 말 홍성으로 귀농한 우리 식구는 그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었다. 농사 첫 해부터 꾸러미 회원을 모집하여 4년째 직거래 방식을 이어오고 있다. 농사짓는 것도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수확물을 파는 것은 더 큰 마음고생이라는 사실은, 농사를 경험해보신 분이라면 다들 공감하실 것이다. 농사 첫 해는 6월 말에 감자 수확했다고 지인들에게 전화해서 자의 반 강매 반 팔 수 있지만 두 해째만 되어도 선뜻 전화기에손이가질않는다.‘ 내가이러려고시골에왔나?’하는신세한탄부터 시작해서 땀흘려 수확한 농산물을 돈으로 교환해야 하는 자조감까지 밀려든다. 회사 다니면서 돈 벌고 농사는 자기 먹을 것만 하라던 부모님과 친구들의 진심어린 충고가 가슴 깊이 새겨지는 것도 이때다.






내가 시골에 온 것은‘그냥’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와보니 농사도 현실이었다. 농사로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하니 일정 이상의 수익도 올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계화를 통해 농사 규모를 키우든, 거름을 많이 넣어 수확량을 늘리든, 그도 아니면 시설재배를 해서 수익성을 올려야 했다. 하지만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와 아내의 걱정을 뒤로 한 채 내가 집어든것은‘삽자루’였다. 귀농 첫 해, 삽 한 자루를 들고 일주일 동안 양파 밭 50평을 만든 적이 있다. 트랙터로 하면 한 시간도 채 안 걸리는 일거리였다. 삽으로 만든 두둑이라고 해서 양파가 더 잘 자랄 까닭도 없었고 그 노동력을 비용으로 환산해 양파 값을 매길 수도 없었다. 그래도 나의 삽질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아내가 신영복 선생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를 읽다가 중국의 사상서 장자편에 나오는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기계는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한다.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는다.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가 깃들지 못하네.”이 문구가 농사의 본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의 본성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세상이다 보니 농사도 효율성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농부도 하나의 직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농부로서 자유롭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얽매이기 싫었고 돈벌기 위해서 농사짓고 싶지 않았다. 이게 내 자존심이고 나름의 철학이었다.


어느 날(그날도 삽질중이었다), 귀농 선배가 찾아와 나같이 농사짓는 게‘자연재배’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는데, 자연재배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기고, 실천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점차 관심을 갖게 되었다. 홍성의 귀농자 모임에서, 초기 단계이지만 자연재배를 하고 있거나 시작하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귀농해서 함께 품앗이하면서 몇 년째 알아온 형님들, 이제 막 홍성에 내려와 새롭게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던 후배 귀농인들, 이렇게 다섯 집이‘홍동자연재배꾸러미’라는 이름으로 모인 것이 2013년 초의 일이다. 자연재배 방식이 무경운, 무투입, 무비닐 멀칭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수확량이 적고 생산물의 볼품이 없어 한 농가가 독립적으로 꾸러미를 꾸리기는 다소 무리가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의기투합이 되었다. 하지만 농사꾼은 동업을 못한다는 속설도 있듯이, 농사를 함께 지어서 나눈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전에 3년 간 우리 가족끼리 꾸러미를 운영할 때는 어떤 물품을 얼마나 보낼지 그리고 꾸러미 값을 얼마로 할지에 대해 혼자서 결정하면 그만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다섯 농가의 연합 꾸러미가 되다 보니 이모든 과정을 상의하고 타협해서 진행해야 했다. 작물에 따른 농사의 쉽고 어려움이 다르고, 1차 농산물과 가공품의 가격 수준이 달라 누가 어떤 작물을 키울지를 결정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꾸러미 상자를 주도 적으로 포장하고 회원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농가에 대한 보상 방법을 상의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그래도 각자 농사지어서 할당된 만큼의 농산물을 납품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협력의 방식이었다. 김장 채소의 경우 농사 자체를 다섯 농가가 함께 지었는데 공동 작업이 많다 보니 키우는 과정에서부터 동료들 눈치(?)볼 일이 많았다.


소비자 회원과의 소통을 위해 매번 꾸러미를 보낼 때, 농사지은 이야기와 작물에 대한 설명을 담은 편지를 함께 보내는데, 여러명이 물품을 넣다 보니 내가 농사짓지 않은 물품에 대해 이야기할 게 상대적으로적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씩 꾸러미 모임을 가진 뒤 모두의 농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꾸러미 모임은 지난 번 보낸 꾸러미에 대한 회원들의 반응을 공유하고 다음 꾸러미 물품을 상의하는 자리의 의미를 넘어 다섯 농가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주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여럿이 함께 꾸러미를 꾸려나간다는 점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처음에 30여 소비자로 시작한 것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성공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올해는 꾸러미 모임을‘협동조합’이라는 공식적인 틀 안에서 꾸려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 생산자는 개인 꾸러미에 좀더 집중하기 위해서, 다른 생산자는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적인 틀에 부담을 느껴서 협동조합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한 해 동안 함께 했던 동료들의 결정을 보면서‘왜 협동조합, 그리고 조직이어야 하는가?’하는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동료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설득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시골에서 농사로 자립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수입 개방 속에서 농산물 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에너지 소비형 농사 구조 때문에 오히려 생산 원가는 늘어만 가고 있다. 가정 경제의 씀씀이를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이도 한계점이 있다. 이럴진대 농부의 힘과 의지만으로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는 없다. 여기에서 도시 소비자의 참여가 필요하다. 꾸러미 회원 참여를 통해 농부의 생산 기반을 마련해주고 농산물을 교환가치가 아닌‘그 가치 자체’로 바라보는 소비자의 동행이 농민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드는 협동조합의 유형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하는‘다중 이해자’협동조합으로 결정했다. 지난 12월 생산자와 소비자 여덟 명이 발기인 모임을 가졌고, 2월 창립 총회를 거친 다음 조합원을 모집(자세한 내용은 우리 가족 블로그 zeumeun2.blog.me 참조)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나를 설레게 한다. 협동조합 설립을 계기로 한 해에 한번쯤은 택배 배송 형태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홍성에 와서 꾸러미를 손수 꾸려가는‘팜파티’를 기획하고 있다. 또 소비자들이 구입한 땅을 생산자 조합원에게 임대해서 안정적인 자연재배 농사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하는 농지은행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지속적일 때, 비로소 농부는 농사의 참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으며, 소비자 또한 먹을거리를 만드는 과정에참여한다는자긍심을가질수있다.


물론 다중 이해자 협동조합이 또 하나의 도전인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처음 몇 명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끈끈한 관계로 시작했던 생협들에서, 이제는 둘 간의 관계가 끊어져 관료화하고 상업화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험도 같은 길을 걷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긴장하게 한다.






하지만 이 순간, 이 긴장을 즐기고 싶다. 귀농 3년 차까지 혼자 짓는 농사와 개인 꾸러미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협동과 연대의 즐거움을 지난해의 경험에서 느꼈다. 힘들고 외로운 일이지만 자연과 함께 하기에 즐겁고 또 티격태격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기에 힘이 난다. 단순히 지역 기반만이 아닌 자연재배라는 농사 방식을 공유하고 있는 동료들과의 협동조합인 만큼 앞으로 한 걸음씩 잘 내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또한 자연재배 농산물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소비자 조합원들이 생산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길 희망한다.


(2014년 귀농통문 봄호 중에서..)



이연진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농사를 꿈꾸며 충남 홍성 홍동에 귀농했다. 자연에만 얽매이는 자유로운 농부의 모습을 그리며, 협동조합이라는 조직과의 공존 실험에도 한창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족 블로그에 농사와 꾸러미 이야기를 올려 회원들과 소통하고 있다. zeumeun2.blog.me




위치: 대한민국 충남 홍성군 홍동면

대한민국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