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종자와 토종의 삶

- 변현단




봄과 여름과는 달리 수확이 한창인 늦가을 아침, 제일 먼저 가는 곳은 정자이다. 밤새 이슬을 맞을까 접었던‘가빠’를 다시 펴고, 각종 울타리콩, 쌀수수, 결명자, 삼씨, 백태, 수세미, 쇠무릎 등이 담긴 채반이나 통을 햇볕에 내놓는다. 저장을 하기 위해 바짝 말려야 하는 것들이다. 종자용이든 음식용이든 보관을 위해“가을 햇살은 약이야!”하면서.


마른 콩꼬투리를 따서 처마 밑 툇마루에 놓으면 완전히 여물어서 손으로 만지면‘톡’하고 열린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콩들을 바구니에 담아 햇볕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13퍼센트 정도의 수분이 되도록 놓아둔다. 밥을 할 때 한 줌씩 밥밑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텃밭에 있는 팥(전라도 말로는‘폿’)이나 녹두는 익은 대로 따서 채반에 놓아두면 꼬투리가 저절로 열린다. 고추밭이나 논 주변에 심어진 폿들은 10월 중순 무렵부터 꼬투리를 따서 집 안 가까이 놓아둔다. 갈무리 시간이 없으면 마냥 놓아두고 겨울에 갈무리해도 된다. 시골에서 팥을 많이 하는 경우는 줄기째 베거나 뿌리째 뽑아 마당이나 아스팔트, 마을어귀 시멘트 바닥에 쭉 깔아놓고 말리면 꼬투리가 잘 터진다. 연두농장시절에는 도리깨로 치기 전에 트럭으로 두어 번 왕복해서 잘 여문 콩깍지를 부수어 콩들을 모아 담아놓고 잘 안 까지는 것을 더 말렸다가 다시 손으로 까기도 했다. 여물지 않은 채 수확한 것들이나 충해를 입은 것은 자연스럽게 까지지 않는다.


10월 중순, 벼 수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락 말리기이다. 요즘엔 매상을 조건으로 하는 경우 건조장에서 말리는데(이건 대부분 찌는 격이다), 이 경우는 내년 종자로 쓰기가 어렵다. 고추도 건조기에서 찐 것은 종자로 쓸 수 없다. 태양에 말린 것을 종자로 써야 한다. 내년 종자로 쓰거나 보관할 나락은 아스팔트에 검은 구멍천을 깔고 2~3일 널어 놓아 때때로 고무래로 뒤덮어주면서 말린다. 얇게 깔면 고무래로 뒤집는 일을 적게 하고 말리는 기간이 짧지만 두껍게 깔면 더 자주 뒤집어줘야 한다. 종자로 쓸 것들은 수분이 13퍼센트 정도, 쌀로 먹을 것들은 수분이 16퍼센트 정도다. 덜 말리게 되면 당장 쌀 맛이 좋긴 하지만 내년 여름이 지나면 저장력이 떨어진다. 수분은 발로 비벼서 쌀이 잘 까지거나, 만져서 나락이 손바닥에 묻지 않고 잘 떨어지면 된다. 대체로 2~3일 말리면 된다. 나락을 손으로 베는 경우야 따로 통통하고 좋은 종자를 얻겠지만 기계로 하는 경우는 수확 전에 웃자라서 나락이 차지 않고 흰색이 보이는 것들(키다리병)을 미리 베어서 버린다. 나락을 말리면서 통통하고 좋은 종자를 한편에 모아 부대에 담아 표시해두고 건조한 곳에 잘 보관한다. 옛날 농가에는 툇마루 옆에 나락 보관 창고가 있다. 쥐들이 달려들지 않도록 외부를 단단히 차단한다. 주변에 우엉씨를 뿌려놓으면 쥐들이 무서워 달려들지 않는다. 창고에 보관할 때는 나락 밑에 콩깍지를 깔면 습기가 올라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한 마지기(200평 기준)에 종자 5킬로그램 정도면 충분하다.


십자화과 채소 중에서 12월에 채종하는 것으로는 배추, 무가 있다. 중부 지방이라도 갓은 굳이 채종하지 않아도 된다. 갓은 뿌리째 밭에 놓아두면 잎은 얼어도 뿌리가 잘 얼지 않아 이듬해 봄에 싹이 오른다. 결구배추(제주 구억, 무릉)는 잘 결구되고 진딧물이나 벌레가 먹지 않은 것을 골라서 뿌리 위 5센티미터를 자른다. 뿌리와 줄기가 연결된 생장점 위를 자른다는 의미다. 밭에서 보관할 때는 가마니나 보온 덮개로 덮어서 보관하고 뽑아서 보관하는 경우는 박스나 마대 자루에 뿌리가 위를 향하도록 놓아 얼지 않도록 보관한다. 무도 손으로 비틀어서 줄기를 떼어낸 통무나 뿌리 위 줄기 3센티미터를 잘라낸 것을 역시 거꾸로 놓아 보관한다. 거꾸로 보관하는 것은, 온도가 적절하고 햇볕이 닿게 되면 싹이 트기 때문이다. 사실 봄에 열어보면 싹이 조금씩 나와 있다. 뿌리는 언제나 어둠을 향해 움직이고 새싹은 광합성 때문에 위를 향해 움직이므로 보관할 때는 이것을 역이용한다. 마늘 파종할 때 뿌리 쪽을 아래로 하지 않더라도 뿌리는 자연스럽게 땅으로 향하기 때문에 파종때 꼼꼼히 하지 않더라도 흙을 덮는 것만 잘하면 된다. 자연은 그들의 본성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배추와 무는 섭씨 0~5도에서 보관하는데 고무 다라에 왕겨를 담고 그 가운데에 넣고 보관해도 좋다. 왕겨는 보온 효과와 통풍, 살균 효과가 뛰어난 천연재로 김장 김치를 잘 숙성시킬 때도 도움이 된다. 또는 비닐봉지에 꽉 동여매어 보관해도 좋지만, 잘못하면 습이 생겨서 썩거나 싹이 움틀 수 있다. 이렇게 보관한 것을 3월 경칩이 지나고 밭에 옮겨 심으면 5월에 꼬투리가 맺혀 채종할 수 있다. 단, 무와 배추는 같은 과로 교잡이 쉬우므로 최소 300미터 떨어진 곳에 심거나, 작은 텃밭인 경우에는 꽃이 필 무렵 한랭사로 덮어서 벌이나 파리가 무나 배추꽃에 오가지 않도록 한다.






가지나 오이, 참외, 토마토 등 가지과 채소들은 잘 익은 것을 따서 문드러지도록 놓아둔다. 촘촘한 채에 넣고 흐르는 물에서 문질러주면 껍데기나 속은 채 밑으로 빠지고 약간의 잔여물과 더불어 씨만 남는다. 그것을 종이에 널어 햇볕이나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말린 뒤에 유리병에 담아놓는다. 나는 유리병을 사용하는데 김에 들어 있는 방습제를 모아두었다가 종자유리병(100미리리터음료병)에넣어두면 식별이 용이하다. 오이는 육종을 위해 모양에 따라 구별해서 놓는다. 조선오이 중에서도 덜 통통하면서 길이가 짧은 오이는 오랫동안 파랗고 떫지 않아 개량오이처럼 먹기 편해 짧은 오이를 집중적으로 채종했다. 30센티미터가 넘는 긴 오이는 그물망이 촘촘하고 육질이 조선오이보다 야물어서 역시 따로 채종했다. 조선오이 중에서도 그 모양과 맛, 조리 방식을 달리해야 고유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것들은 선별해서 채종한다. 무도마찬가지다. 긴 무, 통통한 무, 아래가 통통한 무 등 크기와 모양, 맛에 따라 선발한다. 이듬해 표시를 해두고 채종하고 내가 선호한 것만 남기고 다른 것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눔을 한다. 그래서 토종조사를 할 때 똑같은 조선무, 조선오이라고 하더라도 맛과 용도 모양이 다른 것을 수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외에 호박이나 박은 서리를 맞은 채로 채종해서 툇마루에 놓았다가 영하로 떨어지기 전에 윗목으로 옮겨 보관하고 종자 받기를 원하는 것을 골라서 가른다. 작년부터는 동아박에 빠졌는데 나에게 맞는 약용 음식이기 때문이다. 열이 많은 사람들이 먹으면 살도 빠진다. 동아는 겉의 잔털을 자꾸 문지르면 곪는다. 서리를 맞은 뒤에 따놓고 10월말부터 겨울철 내내 음식으로 사용하는데, 워낙 커서 수십 번에 걸쳐나눠 먹고 찌개나 수제비, 볶음 등 각종 요리에 넣어서 먹는다. 냉장고가 없으면 깍두기나 물김치를 담그거나 소금에 절여서 담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 먹는다. 동아씨는 호박씨보다 주의해서 햇볕에 말려야 한다. 금세 습기가 차올라 곰팡이가 피기 때문이다. 동아씨는 워낙 많아서 종자로 쓰고 나머지는 갈아서 약용으로 먹거나 얼굴 기미를 없애는 팩으로 사용한다.


나는 맨드라미, 꽈리, 봉숭아, 방아 등 관심 있는 꽃도 채종을 한다. 맨드라미, 봉숭아는 상추와 더불어 뱀을 쫓아주기 때문에 장독 주변에 심고, 특히 맨드라미는 신장을 보하는 약으로 쓰기 위해 심는다. 방아는 나물로도 맛있고 향도 좋아 사이짓기로 쓰기 위해 받아둔다. 모두 아주 작은 검정 씨앗이므로 반 정도 맺혔을 때 어서 채종하여 말린다.






종자를 갈무리한 잔여물을 버릴 때는 이듬해 자연스럽게 싹이 터도 좋은 곳을 선택해서 버린다. 꽃은 마당 꽃밭에 버린다. 이듬해 나오면 옮겨 심거나 그냥 놓아둬도 되기 때문이다. 깨를 턴 잔여물은 거름이 부족한 텃밭에 버린다. 겨우내 눈이 녹아 썩기 때문이다. 이듬해 발아되면 옮겨 심는다. 그래서 들깨나 자소 등 충균방제 간작으로 심는 것은 따로 심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텃밭은 줄이 잘 맞춰진 곳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자라는 것들을 중심으로 수십 가지가 자라는 곳이며 정원이며 채종밭이기도 하다. 아욱이나 댑싸리는 마당에서 저절로 자란다. 잡초가 작물을 방해하지 않는 한, 나는 풀들을 함부로 뽑지 않는다. 심지어 집 흙벽에서 나오는 며느리배꼽도 있다. 식물은 조건만 되면 돌이라도 뚫고 나오기에 풀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반드시 산야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 한 가운데에서 서로 생명을 주고받는 것이라 마당과 텃밭 가장자리나 길가, 그리고 논과 밭에서 자라는 수없는 식물, 거북꼬리나 고들빼기, 머위, 달래, 취, 질경이 등은 자생하도록 놓아둔다.


토종 종자‘씨드림’을 운영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토종이냐 아니냐에 얽매이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만든 종자-병충해에 강한 개량 종자라고 떠드는-를 팔아 돈을 벌고 종국에는 식량을 지배하는 기업들의 손에 내가 놀아나지 않기 위해 나는 농부로서‘농부권’을 중요시한다. 쿠바에서 가져오든 중국에서 가져오든 그 종자가 내 밭에서 잘 자라고 내 입맛에 맞으면 그 종자를 채종하고 육종하는 것이다. 특히 내 밭은 자연 퇴비, 즉 밭에서 나온 풀과 기껏해야 내가 살림하면서 버리는 부산물, 내 똥을 제외하고 퇴비 재료를 외부로부터 가져오지 않는다. 여섯 마지기(한 마지기 200평) 논농사와 네 마지기 밭농사는 그 속에서 자란 생명의 잔재들이 고스란히 다시 돌아가는 순환 농사이므로 농업인 입장에서 보면 무퇴비, 무경운이 되는‘한심한’농사가 된다. 수량과 크기, 즉‘다다익선’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내 농사 방식에 적응하는 종자들이 되어간다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종자와 인간은 같다. 야생적이고 척박한 곳에서 종자는 적응하고 발현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 것들이 생명력은 더욱 올차다. 그런 기운을 먹고 살아야 인간 또한 건강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종자들은 나의 상황에 잘 적응된 것들이라 오히려 많은 양의 퇴비와 잘 갈아진 밭에서 자라면 잘 쓰러지고 병충해를 입는다. 






나는 산업으로서의 농업은 살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의 농업은‘농부권’을 강탈하고 규모와 기계에 의존하여 유통과 식품 기업의 노예에 불과하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버린다. 너무 많이 소비하고 너무 많이 돈을 번다. 결국 망가지는 것은 우리 심신이고 그 이익은 기업과 정부 소수의 권력자들의 부를 키울 뿐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잘사는 길은 농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농부로 사는 길이다. 농부는 나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들인 노동력으로 자급하고, 자연이 준 것들은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사람이다. 돈으로 거래되는 것은 돈이 투입되는 것만 거래되면 된다. 당신이 시골에서 살아가는 데 얼마나 필요할까? 자연이 살 곳과 먹을 것을 주는데 얼마나 더 필요할까? 나는 자유롭다. 돈에 매이지 않는 농사를 짓고,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종자와 재배, 수확 그리고 갈무리, 보관, 이용에 돈이 들어가지 않으니 돈으로 거래할 이유가 없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이유가 없다. 나는 없으면 없는 대로‘나’에 맞춘다. 먹을 것, 사는 것, 입을 것, 길이 막혀도, 전기가 끊겨도 나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국가와 사회가 나를 착취하고 조종할 수 없는 여건을 만드는 일. 자연을 경애하고 자연의 지혜를 배우는 토종의 삶, 자립농부로 살고 있기에 나는 자유롭고 행복하다. 무릇 종자란 토종의 삶을 만나야 종자 자신의 유전적 본성을 한껏

펼치게 된다. 따라서 토종 종자는 토종의 삶을 만나야 한다.


(2013년 귀농통문 겨울호 중에서..)


변현단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글을 짓는다. 경기도 시흥에서 공동체‘연두농장’을 운영하다가 곡성 산골로 자리를 옮겨 자립 생활을 꾀하고 있다. 농사꾼으로 저술가로 강연자로 온 삶을 살고 있다. 전국 토종 종자 모임‘씨드림’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연두, 도시를 경작하다』, 『약이되는잡초음식, 숲과들을접시에담다』,『 자급자족사회를위한農이야기, 소박한미래』,『 자립인간』들이 있다.




위치: 대한민국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

대한민국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